SKINGRAPHICA Featured Artist 시리즈
Featured Artist · Realism · 호주 멜버른

Mick Squires

우연한 리얼리스트

Mick Squires, 그리고 제대로 해내기 위한 조용한 규율

Featured Artist 커버의 Mick Squires

오랫동안 Mick Squires는 자신이 가짜일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사람들이 이따금 지나고 나서야 고백하는 자기 의심, 그러니까 털어놓아도 안전하고 돌이켜 보면 오히려 그럴듯하게 들리는 그런 의심이 아니었다. 그것이 일어나고 있던 바로 그때 그를 진정으로 흔들어 놓은 의심이었다. 일을 멈추게 하지는 않지만 조용히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자신을 향한 시선을 날카롭게 하고 손에 닿을 듯한 모든 성공을 잠정적인 것으로 느끼게 만드는 그런 의심. 그것이 그가 자리를 지키는 것도, 기술에 몰두하는 것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도 막지는 않았다. 그저 풀리지 않은 채 그의 곁에 머물렀고, 인정이 찾아오기 훨씬 전부터 타투와 그의 관계를 빚어 갔다.

산업으로서도 문화로서도, 타투는 더 깔끔한 서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필연을 좋아한다. 최고의 아티스트들은 언제나 알고 있었다는 생각, 처음 머신을 쥔 순간 무언가가 딱 맞아떨어졌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는 생각을 좋아한다. 신동 이야기는 관련된 모두를 안심시킨다. 재능은 일찍 드러난다. 방향은 분명하다. 성공은 시간문제가 된다.

Mick은 한 번도 그렇게 느낀 적이 없었다.

그는 20대 초반, 멜버른 외곽의 한 해안 마을에서 타투를 시작했다. 소명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 일이 있었고 그에게 일할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운명의 순간도, 이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내면의 확신도 없었다. 훗날 도시로 옮긴 것도 낭만적인 야망보다는 현실적인 필요 때문이었다. 더 좋은 스튜디오는 더 좋은 고객을 뜻했다. 더 좋은 고객은 실력을 키울 기회를 뜻했다. 그는 그 논리를 신중하게 따르며 한 걸음씩 커리어를 쌓았다.

밖에서 보기에 그것은 발전이었다. 그는 쉼 없이 일했다. 규율을 지켰다. 기술은 나아졌다. 하지만 내면에서는 무언가가 끝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머릿속에 품은 이미지는 선명하고 정밀했다. 그런데 피부 위에 나타나는 것은 몇 번을 해도 가깝지만 완전하지 않았다. 좋은 작품, 때로는 아주 좋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를 리얼리즘으로 이끈 비전에 아직 정직하지는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보였다.” 그는 말한다. “다만 그걸 제대로 착지시킬 수가 없었다.”

‘거의 다 왔다’는 것은 머물기에 불편한 자리다. 무엇이 빠졌는지 알아볼 만큼 가깝다. 그것에 책임을 느낄 만큼 가깝다. 노력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느낄 만큼 가깝다. 수년 동안 Mick은 그 긴장을 조용히 품고 지냈다. 과장하지도, 그것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그저 더 열심히 일했다. 꾸준함이 결국 그 간극을 메워 줄 것이라 여기면서.

때로는 그랬다.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모든 것을 바꾼 순간은 영감이나 자신감, 혹은 인정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중단으로 찾아왔다.

조용한 순간의 Mick Squires
정밀함에 앞선 고요

한결같은 속도. 세심한 눈.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기준.

어느 날 시술 도중 타투 머신이 고장 났다. 당장 대신할 것이 없었다. 고객은 기다리고 있었다. Mick은 필요에 따라 적응했다. 속도를 늦췄다. 전압을 낮췄다. 손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했다. 과정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대신, 피부가 실시간으로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거의 즉시 작품이 달라졌다.

피부가 진정되었다. 색소가 더 고르게 자리 잡았다. 전환은 부드러워졌다. 이전에는 억지로 끌어낸 듯했던 깊이가 나타났다. 수년 만에 처음으로, 몸 위의 이미지가 그가 머릿속에 홀로 품어 온 이미지를 닮아 있었다.

승리의 순간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조용했고, 더 마음을 어지럽혔다.

Mick에게 그 깨달음은 분명했고, 조금은 어리둥절한 것이었다. 타투는 신비로운 의미에서 그가 하도록 정해진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재능도 비전도 아니었다. 문제는 맞물림이었다. 장비도, 세팅도, 물려받은 가정들도, 그 어느 것도 그가 일하는 방식과 진정으로 맞지 않았다.

고장 난 머신과 즉흥적인 조정에서 탄생한 그 타투가 그를 바꾸었다. 피부 위의 작품이 그가 늘 이루려 했던 것과 처음으로 완전히 일치했다. 그것은 발견이라기보다 허락에 가까웠다.

Mick Squires의 타투 작품
조용한 통제

힘주지 않고 찾아오는 깊이. 손을 많이 댄 흔적이 아니라 필연처럼 읽히는 전환.

그때부터 Mick은 기계 장치에 깊이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기술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니라, 기계 장치야말로 의도와 실행 사이에 남은 마지막 장벽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머신을 개조하기 시작했고, 이어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범용 도구에 손을 맞추는 대신, 자신의 손에 정확히 반응하도록 머신을 조율했다. 도구가 뒤로 물러나 더 이상 주의를 요구하지 않게 되자 작품이 활짝 열렸다.

리얼리즘은 더 이상 그가 좇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허락하는 것이었다.

이제 Mick은 바늘이 피부에 닿기 훨씬 전부터 이미 관찰하고 있다.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것은 수분이다. 피부가 얼마나 잘 관리되어 왔는지, 손 아래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 그때조차 그는 판단을 피한다. 타투에서 확신은 위험하다는 것을 경험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이상적으로 보이는 피부가 잉크를 거부할 수도 있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피부가 뜻밖의 결과를 보여 줄 수도 있다. 그는 더 이상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결과를 예측하지 않는다. 타투에는 너무 많은 것을 단정하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피부는 움직인다. 몸은 위치를 바꾼다. 통증은 자세를 바꾼다. 부기는 보이는 것을 바꾼다. 회복기는 어떤 계획으로도 다 헤아릴 수 없는 변수를 끌어들인다. 통제는 언제나 일시적이라는 것을 Mick은 배웠다.

그가 실천하는 타투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대화다. 아티스트와 머신, 그리고 종이나 캔버스처럼 굴기를 거부하는 살아 있는 표면 사이의 대화. 작업은 조정 속에, 생각하는 것과 반응하는 것을 동시에 해내는 데에, 좌절이나 자아에 휘둘리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는 데에 있다. 그것은 예술이자 과학이지만, 결코 완전히 어느 한쪽이 되지는 않는다. 인간이라는 요소는 고정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 철학은 바늘 너머로 훨씬 멀리 뻗어 있다.

스튜디오에서의 Mick Squires
인간의 속도

먼저 그 자리에 온전히 있을 것. 작품은 그 뒤를 따른다. 고객은 결코 단순한 표면이 아니다.

Mick이 The Black Mark를 공동 설립했을 때, 그는 자신의 타투를 이끄는 것과 같은 가치를 중심에 두고 그곳을 세웠다. 차분함. 수용. 배려. 그는 인상적이기 이전에 단단히 뿌리내린 공간을 원했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고객이 환영받고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곳, 누군가에게 자신의 피부를 맡기기로 한 선택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느끼는 스튜디오.

그 느낌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누군가가 공간에서 어떻게 느끼는지는 그가 어떻게 앉아 있는지에 영향을 준다. 어떻게 앉아 있는지는 피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영향을 준다. 그 무엇도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The Black Mark의 문화는 의도적으로 인간적이다. 우정, 배움, 지지, 그리고 단순하게 들리지만 놀라울 만큼 드문 것, 서로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 위에 세워져 있다. Mick은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위장한 거리 두기를 거의 참지 못한다. 헤드폰 뒤에 앉아, 교감을 희생하면서 자기만의 편안함 속으로 물러나는 것은 핵심을 완전히 놓치는 일이다.

“종이에 타투를 하는 게 아니다.” 그는 말한다.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어떤 고객은 조용함을 원한다. 어떤 고객은 긴장을 다스리기 위해 대화가 필요하다.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Mick은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맞춘다. 누군가를 편안하게 해 주는 일은 복잡하지 않지만, 알아차리는 감각은 필요하다. 타투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며, 고객을 물건처럼 대하는 것은 아무리 효율적으로 느껴지더라도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스튜디오와 커피의 관계에도 이런 사고방식이 드러난다. Mick이 팀을 위해 아침 커피를 내리던 것에서 시작된 일은 공들인 스튜디오 안의 의식으로 발전했다.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속도를 위해서다. 좋은 커피는 사람을 느긋하게 만든다. 긴 하루를 앞두고 여백을 만든다. 집에서 Mick은 완전 수동식 스프링 레버 에스프레소 머신을 쓴다. 주의를 요구하고 지름길을 허락하지 않는 장비다. 그는 그 낭만을, 몸으로 하는 감각을, 그 자리에 온전히 있어야 한다는 요구를 사랑한다.

완벽한 커피 한 잔은 없다고 그는 단언한다. 어쩌면 최고의 한 잔은 몇 년 전에 이미 마셨고, 그 뒤로 줄곧 그것을 좇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금의 커피가 형편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기준이 높다는 뜻이다.

그래도 그는 선을 긋는다. 커피는 그 온갖 미묘함에도 불구하고 타투보다 과학에 가깝다. 정해진 변수 안에서 움직인다. 타투는 그렇지 않다. 몸은 결코 정지해 있지 않기 때문에 타투는 끊임없는 조정을 요구한다. 사람은 움직인다. 피부는 변한다. 모든 것이 달라진다.

“준비는 할 수 있어.” 그가 말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반응해야 해.”

리얼리즘은 특별한 종류의 인내를 요구한다. 고통을 견디는 극적인 인내가 아니라, ‘이 정도면 됐다’를 받아들이지 않는 더 조용한 규율이다. Mick은 그 인내의 뿌리를, 어림짐작에 만족하는 것을 한 번도 허락하지 않은 내면의 목소리에서 찾는다.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보다 더 나아야 한다.

그의 시술은 대개 길고, 때로는 몇 달에 걸쳐 이어진다. 서두름도, 과시도 없다. 이미지가 완성되었다고 느껴질 때까지 디테일과 뉘앙스를 꾸준히 쌓아 올릴 뿐이다. 그는 접근 방식을 바꾼 뒤 처음으로 모든 것이 온전히 맞아떨어졌던 타투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것이 그의 명성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수년간 품어 온 긴장을 마침내 풀어 주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며 인정은 조용히 뒤따랐다. Mick은 현재 SKINGRAPHICA 글로벌 톱 100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최고 수준에서 지속적인 숙련과 일관성, 절제를 작품으로 증명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다. 그에게 이 인정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짐작하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지름길 없이 오랜 시간 끈기 있게 쌓아 온 작품 세계를 비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쉽게 간과되는 무언가다.

Mick이 기량을 다져 가던 시절, 타투에서 컬러 리얼리즘은 아직 모색 단계에 있었다. 지금은 확립된 것처럼 보이는 기법들도 당시에는 불확실했다. 전 세계의 소수 아티스트들이 본보기도, 보장도 없이 정보를 나누고 함께 문제를 풀며, 대개는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었다. 아직 가능하다고 증명되지 않은 일에 누군가는 처음으로 도전해야 했다.

Mick은 그 순간의 일부였다.

그는 그 이야기를 큰 소리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이 기술을 앞으로 밀어 올리는 데 힘을 보탰다는 것,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규칙이 아직 쓰이던 시절에는 인내와 실험, 그리고 ‘이 정도면 됐다’를 거부하는 태도를 필요로 했다는 것은 그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미국, 유럽, 아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의 고객들에게 타투를 해 왔고, 여행은 그가 이미 짐작하던 것을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장소가 달라져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타투는 언제나 일대일이다. 바늘이 피부를 드나든다. 신뢰 위에 세워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이다.

대작을 마치고, 때로는 몇 달에 걸친 작업 끝에 고객이 마침내 그의 의자에서 일어날 때, Mick은 그 타투가 기술적 정확성 이상의 것을 담고 있기를 바란다. 기억을 담고 있기를 바란다. 그 이미지를 선택한 이유. 그 과정의 경험. 하나의 표면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대우받았다는 느낌.

잉크는 자리를 잡는다. 피부는 변한다. 삶은 계속된다. 제대로 다뤄진 경험은 남는다.

양과 소음, 노출이 흔히 보상받는 업계에서 Mick Squires는 절제로 커리어를 쌓아 왔다. 그는 조용히 일한다. 세심하게. 정성을 다해. 그의 규율은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것, 속도를 늦추고, 귀 기울이고, 조정하고, 지름길을 거부하는 태도야말로 머신의 스위치가 꺼지고 피부가 회복기를 모두 지난 뒤에도 오래도록 그의 작품을 남게 한다.

예약 · 호주 멜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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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k Squires의 타투 작품
절제

억지스러움도, 과장도 없다. 이미지는 그저 있어야 할 자리에 깔끔하게 내려앉는다.

Mick Squires의 타투 작품
존재감

흔들림 없는 작품. 오래 바라볼수록 더 많은 것을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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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ck Squires,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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